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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렬의 새이야기] 저어새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년 5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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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이나 갯벌에서 단발머리 소녀처럼 길게 자라난 장식 깃을 찰랑거리고 밥주걱 같은 넓적한 부리를 좌우로 휘저으며 먹이를 찾는 저어새를 만나면 항상 가슴 한쪽이 저려오는 애틋한 감정에 젖는다.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대만과 홍콩 등지의 자연습지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왔건만, 이젠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습지가 메워지고 수질 오염으로 먹잇감인 물고기와 각종 수서생물이 급격히 줄면서 멸종 위기에 내몰린 그들의 처지가 안타깝기 때문이다.
이들의 서식지가 보호되지 않고 계속해서 파괴된다면 1000여 마리밖에 남지 않은 저어새들은 수십 년 안에 멸종할 것으로 생태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최근 강화도 인근 해상 비무장지대의 무인도가 위태한 그들의 마지막 안식처이자 번식지로 확인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저어새에게는 우리나라가 ‘희망의 땅’으로 떠올랐다.

새를 연구하는 조류학자나 생태연구가들에게 우리나라를 대표할 만한 새를 추천하라 한다면 그 첫째 순위에 오르는 새가 바로 ‘저어새’다. 주걱 같은 검은 부리, 황금으로 아이섀도를 그린 듯한 붉은 눈, 노랗게 빛나는 가슴. 여기에다 단발머리 소녀 같은 머리의 장식 깃은 매력을 더하고 비상하는 자태는 신비감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 같은 저어새의 99%가 한반도 서해 갯벌에서만 새끼를 키워낸다고 하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새로 추천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내가 저어새를 처음 본 것은 1999년 여름 강화도에서다. 최대 월동지인 대만과 홍콩에서 저어새 7마리를 붙잡아 인공위성 추적장치를 달아 이동경로를 연구한 결과 추적에 실패한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강화도 인근 무인도로 날아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촬영에 나선 것이다.

99년 7월 어느 날, 강화도 갯벌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닌 끝에 강화군 흥왕리의 한 양어장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50여 마리를 처음 보았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저어새의 신비로움에 사로잡혀 있다.




그 후 나는 저어새가 찾아오는 봄부터 월동지로 떠나는 가을까지 수시로 강화도를 찾아 숨이 막힐 것 같은 찜통더위 속에서, 때론 천둥번개가 치는 폭풍우를 맞으며 한 평 남짓한 위장막에서 하루종일 저어새들을 바라보곤 한다.

저어새는 아직도 그 생태가 제대로 밝혀진 바 없는, 보면 볼 수록 묘한 매력이 있는 신비스러운 새다.

지난해 월동지인 대만에서 양식장의 폐사한 물고기를 먹고 보툴리즘에 감염돼 73마리가 죽었는데, 이는 전 세계에 남아 있는 저어새의 10%에 이르는 숫자였다. 조류독감처럼 빠르게 다른 개체에 감염이 확산되는 경우였다면 저어새는 지난 겨울 멸종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갯벌과 습지의 파괴가 어디 이 새의 생존에만 영향을 끼칠까마는, 지금 우리의 갯벌과 습지에서 살아가는 저어새의 처지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여 있다.

자세한 저어새의 이야기는 www.segye.com ‘이종렬의 생태이야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일보 2004.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