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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형성배경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는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강제로 을사조약을 체결하고 대한제국은 급기야 1910년 한일합방에 의해 국권이 침탈당했다. 1945년 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대한민국은 일제로부터 해방 되었으나 대한제국은 소멸된 상태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마저 바로 자주 독립국가를 건국할 수 없었다. 우선 미국과 소련은 1945년 8월 16일 일본군의 항복접수와 무장해제를 위한 작전 분계선으로 한반도 중간에 38선을 획정하여 남한에는 미군이 북한에는 소련이 상주하여 미소가 한반도를 분할점령하게 된 것이다.

이후 제2차 대전의 승전국이며 연합국이었던 미국과 소련은 전후 일본의 처리 문제와 한반도문제를 둘러싸고 대립하였다. 해방 후 즉각 정부수립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을 고려하지 않고 미국과 소련은 신탁통치 안을 놓고 반목하면서 장기간의 군정기를 가졌다. 대다수 우리 국민의 통일정부수립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은 각기 자국의 이익에 유리한 정권수립이 되도록 지원함으로서 분단 고착의 단초가 되었다. 이후 미국의 자본주의와 소련의 공산주의의 이념적 갈등과 긴장은 고조되었고, 남한과 북한 모두가 흡수통일을 정당화하며 극한적 이념적 반목이 계속 되었다. 소련의 공산화 전략과 팽창 남하전략의 사주를 받은 김일성은 치밀한 전쟁준비를 하여 1950년 6월25일 불법 남침을 감행하였다. 대한민국은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되고 수개월 만에 부산를 비롯한 경상남도 일부 지방을 제외하고 공산정권치하에 떨어졌다.

이에 UN은 북한의 남침을 불법침략으로 결의 하였다. UN은 불법침략을 응징하기 위하여 UN군을 창설하였고 16개국이 참전하여 공산침략군과 싸웠다. UN군 총사령관인 멕아더장군이 지휘하는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수도를 수복하고, 압록강까지 진격하였으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국군과 연합군은 후퇴하였다. 효율적인 작전수행을 위하여 이승만 대통령은 군 작전권을 UN군 총사령관에게 이양하였다.

6.25 한국전쟁은 반전과 반전을 거듭하다가 정전협정이 조인되면서 휴전되었다. 정전협정은 국제연합국(UN군)총사령관과 조선인민군 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에 의해 1953년 7월 27일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 (휴전 협정)으로 조인되었다. 이 정전협정에 의해 합의 설치된 선이 휴전선이 되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휴전선’이란 바로 이 ‘군사분계선’을 말하는 것인데, 휴전당시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의 전투 배치선을 중심으로 육지 248km(155mile)와 서해 해상 약 200km(125mile)의 선이 휴전선으로 설정되었다.

비무장지대가 양측의 합의에 의해 설정된 지역인 반면 ‘민간인 통제선’은 대한민국 정부의 필요에 따라 휴전선 남방지역에 군사시설 보호와 보안유지를 위해 민간인을 통제할 목적으로 남방한계선으로부터 남쪽으로 5~20km 지역에 설치된 일련선의 선을 말한다. 따라서 민간인 통제지역이란 남방한계선으로부터 민통선까지의 지역을 말하며, 또한 북한에도 이와 유사한 규모, 성격의 선과 통제지역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통지역은 거주, 이전, 직업선택, 사유재산권 등에 대한 자유가 크게 제한되고 있으며 민간인의 출입이 극히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