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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월의 노래 ‘비목’ 작사가 한명희 교수 (1)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년 6월 29일
파일첨부
첨부파일없음
지금부터 꼭 40년 전의 일이다. 강원도 화천군 백암산의 비무장지대에 한 낭만주의자 초급장교가 배속됐다. 초가을 오후 최전방 순찰에 나선 그는 잡초 우거진 양지 바른 산모퉁이에 멈춰섰다. 이끼 낀 돌무더기가 군홧발에 툭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무심코 돌무더기를 슬쩍 밀쳐냈다. 뭔가 삐죽이 나왔다. 막대기로 흙을 파헤쳤다. 녹슨 철모가 손에 잡혔다. 천천히 끄집어올렸다. 해골 하나가 철모에 끼여 있었다. 해골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또 다른 돌무더기를 밀쳐냈다. 역시 비슷한 광경이 연이어 벌어졌다.
●군대서 무명용사 유골 보고 ‘비목’ 작사 아,이게 무명용사들의 주검이구나.나처럼 젊었을 나이에 6·25를 만나 싸우다 죽어간 그대들이 아닌가.그는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 가슴을 쥐어짜는 슬픔에 펑펑 소리내어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달빛에 의지해 겨우 일어섰다. 이때였다. 바로 옆 산모퉁이에 소복 차림의 여인이 나타났다. 움찔 놀랐다. 눈을 여러번 비벼가며 자세히 쳐다봤다. 새하얀 산목련이 달빛을 받아 슬픈 여인의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 여인은 화약냄새를 온몸으로 맡으며 무명용사의 넋을 말없이 달래고 있었다.
국민가곡 ‘비목’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 초급장교 한명희(65)씨는 서울시립대 음악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 교수는 요즘 ‘비목’과 같이 영원히 기억될 ‘아주 특별한 일’을 준비한다. 6·25전쟁을 테마로 한 ‘한국전쟁 추념 문화단지’ 조성을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이 단지는 전쟁박물관·평화의 종탑·칼토피아(Cultur+Utopia) 등을 갖춘 문화와 예술적 성지(聖地)를 지향한다. 워싱턴의 ‘메모리얼 파크’를 연상하면 비슷하다고 했다.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이미시문화원’에서 그를 만났다. ‘ㅇ·ㅁ·ㅅ’을 의미하는 ‘이미시’는 그가 만든 말이다. 30년전 이 근처에 처음 등산왔을 때 산과 계곡,한강이 그럴 듯하게 어우러진 모습에 반해 집 한 채를 계약,곧바로 삶의 터전을 삼았다. 이후 농부처럼 하루하루 벽돌 쌓으며 집을 꾸미기 시작한 것이 지금의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한국판 ‘메모리얼 파크’ 꿈꾸다 최근 그는 이곳에서 문화단지 조성을 위한 설명회를 가져 주목을 끌었다. 강영훈 전 국무총리·조성태 전 국방장관·권태준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김형국 서울대 교수·김후란 시인·서경석 예비역 중장·서지문 고려대 교수·이애주 서울대 교수·최정호 전 연세대 교수·표재순 연출가 등 30여명의 인사가 참석했다. 이들은 문화추념단지 건립을 위한 입법청원을 추진하는 데 적극 동참하기로 했다.
추념단지 조성 규모는 남양주시가 자체적으로 그린벨트를 해제할 수 있는 남양주 일대의 12만여평 정도가 우선 거론된다. 이를 바탕으로 6·25전쟁 60주년이 되는 2010년에 완공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여기에 한국을 도운 16개국뿐만 아니라 적군이던 북한·중국 등 참가국가별로 희생자를 추모하는 조형물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가칭 ‘화해의 비(碑)’로 정했다.
추진배경은 이렇다. 1996부터 강원도 화천에서 열리는 ‘비목문화제’에 꼭 참석해온 그는 해마다 여름이면 젊은 장교 시절처럼 이름없는 유골들의 넋을 기려왔다. 그러면서 이들을 위한 문화예술 마당이 없다는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또 학자들이 전쟁사를 연구하거나 국제적 평화회담을 언제든 개최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오랫동안 ‘추념 문화단지’를 구상해 왔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2004.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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