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덴차(Cadenza)는 오케스트라 연주에서 독주자가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개인플레이의 시간을 뜻합니다. 팀워크가 생명인 합주에선 독주자의 기량에 대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연주입니다. 저는 장병 한명 한명을 무한신뢰합니다. 우리 중 한 명이라도 서로 믿지 못한다면, 서부전선 최전방 경비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습니다.”
7월 25일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곳을 지키는 육군1사단의 신현돈 사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상호간의 믿음이 바로 국방에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카덴차 무한 신뢰정신을 강조하는 1사단장.
이날 방문은 책이나 TV 프로그램에서만 보던 판문점에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오전 10시25분부터 1시간 동안 이어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관람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몇십 미터도 되지 않은 판문각의 북한측 경비병은 망원경으로 계속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공동경비구역(JSA)을 지키는 우리 병사 모습.
관람을 안내한 병사는 “함부로 북한군에 손가락질을 하는 등 작은 행동 하나하나도 트집잡힐 수 있다”며 주의를 주었다.
북한이 가장 잘 보이는 우리측 최전방 GP에서는 개성 송악산이 일산에서 바라보는 북한산보다 더 가깝고 깨끗하게 보였다. 이곳 GP에서 개성 시내까지는 불과 9㎞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고 한다. 개성공단으로 이어지는 철길과 도로, 그리고 전력공급선도 뚜렷하게 보였다.
DMZ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우리측 GP.
이동하는 중간 중간 우거진 수풀 사이로 이름 모를 새떼와 야생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놀고 있었다. 휴전 뒤 50년 이상 사람의 왕래가 자유롭지 못한 덕분에 세계가 주목하는 천혜의 자연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니 반드시 좋아해야 할 일만은 아닌 듯했다.
천혜의 자연 DMZ 내의 수백 마리의 이름 모를 새떼.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남북 관계가 나빠진 상황에서도 병사들은 믿음직하게 판문점을 지키고 있었다.
DMZ 수색대대 민정경찰로 경계근무를 서고 있는 안익환 병장은 “조국이 얼마나 소중한지 군대에 오기 전에는 몰랐다”고 한다.
그는 “마치 외국에 나가서 태극기를 보면 괜히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공동경비구역 안에 있는 대성동 마을에 펄럭이는 대형 태극기를 보면서 늘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곤 한다”며 “그게 바로 내가 조국을 지키는 이유”라고 말했다. 대성동 마을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400m 떨어져 있다.
북한측 선전마을 기정동 모습. 맞은편에 우리측 대성동마을이 있다.
우리는 그동안 얼마나 많이 태극기의 소중함에 대해서 무시하고 살아왔는지 모른다. 국경일이면 집 앞에 매달아야 할 태극기를 휴가를 떠난다는 기분에 들떠 방구석에 처박아 놓기 일쑤였다. 월드컵 경기 때처럼 축제 때나 흔들어대야 하는 도구 정도로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계속해서 우리 일행은 DMZ내의 통일촌 마을로 이동했다. 이곳은 군사분계선 남방 4.5㎞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 1973년 8월 당시 제대를 앞둔 하사관 40세대와 실향민 40세대 등 모두 80세대로 출발한 이곳에는 현재 102세대 43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마을에서 36년 동안 살아온 김순조 할아버지는 원래 경주가 고향인데, 하사관 제대 후 바로 이곳에 정착해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김 할아버지는 “처음 마을이 생겼을 때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군을 도와 북한군을 경비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면서 “지금도 군작전이 있는 날이면 협력하면서 농사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북쪽에서 어떤 도발을 하든지 여간해선 놀라지도 않지만, 국군 장병들과 합심해서 스스로 마을을 지켜내려는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마을의 유일한 학교인 군내초등학교에 다니는 최영진군은 “우리 마을에 들어오려면 군인들이 검문을 해서인지 도둑이 얼씬하지 못한다”며 “마을 사람 모두 군인 아저씨들과 친하게 지낸다”고 말한다.
수련회 참가자들이 준비한 위문공연에 통일촌마을 주민과 장병들이함께 참석했다. 가족처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DMZ을 찾아가기 전 가졌던 막연한 걱정과 DMZ 견학 중에 느꼈던 긴장감은 사라졌다.
통일촌마을 부녀회관 앞에서 공연을 보고 잇는 주민과 장병들.
그러나 이 같은 평화 뒤에는 경계근무 등 나라를 지키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장병과 주민이 자리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통일촌 마을은 접경지란 특성 때문에 군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생활할 수 있다”며 “군인들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제대로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군인과 민간인간의 갈등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통일촌 마을에서 진정한 조국애의 ‘카덴차’는 군인끼리의 믿음, 일반 주민들간의 믿음, 그리고 군인과 주민 사이의 믿음 모두가 바탕이 돼야 가능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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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8월3일 대한민국 정책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