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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노래 ‘비목’ 작사가 한명희 교수 (2)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4년 6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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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이 사라진 넋 기릴 문화마당 그는 1939년 충북 충주에서 가난한 농가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공상하기를 좋아했다. ‘인생이 뭐냐.’는 물음에 자꾸 빠져 제때의 공부시간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서울대 철학과에 진학하려고 시험을 봤으나 두번 고배를 마셨다. 삼수 끝에 그는 친구의 권유로 서울대 국악과(2회)에 지원,합격했다.

대학 1학년때 그는 서울대 음대 학장인 현제명 박사의 장례식을 보고 장차 큰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다짐했다. 장례식때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없어‘라는 노래가 울려퍼지는 광경에 가슴 뭉클하는 감동을 느꼈다.

6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ROTC 2기 소위로 임관,전방부대인 7사단에 배치받았다. 이때 비무장지대를 순찰하면서 무명용사 수백구의 해골을 접했다. 배추 심으려고 흙을 파면 해골이 무더기로 발굴되는 광경을 보고 밤잠을 설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휴가요? 울고 나왔다가 울고 들어갔지요.친구들과 술을 마실 적마다 그 해골들이 자꾸 떠올라 저를 슬프게 만들었습니다. ” ●PD에서 교수까지… 가곡보급에 힘써 66년 제대후 그는 TBC 프로듀서 공채3기로 입사했다. 이듬해에는 ‘가곡의 언덕’이라는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을 맡았다. 이때 ‘일출봉’과 ‘기다리는 마음’을 자주 내보냈다. 예상 밖으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곡의 오솔길’이라는 일일 프로를 맡았다. 하루는 고교 교사로 있는 군대 친구한테서 새노래 ‘얼굴’을 받아 방송에 내보냈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또 한번 히트쳤다.

그러던 어느날.같은 PD이자 가곡운동을 함께 벌이던 장일남씨가 갑자기 시 한수 지어달라고 했다. 그는 이날 서울 무교동 일대에서 술 마시며 돌아다니다가 밤늦게 방송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숙직하던 동료를 집에 보내고 대신 숙직을 했다. 잠깐 상념에 잠겼다. 백암산 산모퉁이가 저절로 떠올랐다. 펜을 들었다. 느낌을 그대로 원고지에 옮겼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제목을 ‘비목’이라고 했다.

이튿날 장일남씨에게 원고를 주면서 창피하니까 본명이 아니라 일무(一無)라는 예명으로 대신해 달라고 했다. 방송이 나가자 반응이 무척 좋았다. 작사가 ‘한일무’에서 ‘한명희’로 바뀐 것은 5년 후였다. 이 무렵 가곡 ‘산목련’을 썼지만 방송 도중 원판이 지워져 영영 미아가 돼 버렸다.

이후 성균관대에서 예술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면서 10년 PD생활을 접고 75년부터 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오는 8월 정년을 맞는 그는 “요즘 우리 사회는 전체적으로 피곤한 것 같다. ”면서 “산업사회에 풍류문화와 선비정신을 접목시키는 진정한 자세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서울신문 2004.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