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의 모든 것

들어가기 전 한반도 DMZ 일원의 공간 구성 4 1 DMZ의 역사 DMZ는 어떻게 남과 북의 경계가 되었을까요? 8 DMZ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역사를 알아봅시다. 9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9 DMZ의 새로운 가치와 달라진 위상을 알아봅시다. 11 2 DMZ의 자연 환경 DMZ는 전쟁의 폐허에서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변신했습니다. 12 DMZ는 한반도의 동서생태축으로 변신했습니다. 12 DMZ는 한반도의 지질학적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15 목 차

3 DMZ의 인문 환경 DMZ 일원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요? 16 민통선 마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16 민북 마을이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16 4 DMZ의 현재 DMZ의 가치를 알아봅시다. 20 DMZ의 인식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2 5 DMZ 일원의 명소 26

4한반도 DMZ 일원의 공간 구성 DMZ 일원은 통상적으로 정전협정에 의해 설정된 DMZ, 군사시설보호법에 의한 민통선지역, 접경지역지원특별법에 의한 접경지역을 포함합니다. 길이 103km(총 248km의 41.5%, 이 중 강원도가 145km), 넓이 153km2(남측 453km2의 33.8%, 이 중 강원도가 300km2)에 이르는 지역입니다.  DMZ(DemilitarizedZone:비무장지대) DMZ는 일반적으로 국가가 자국의 영토임에도 국제법상 병력 및 군사시설 을 주둔시키지 않을 의무가 있는 특정 지역이나 구역을 의미합니다. 한반도 의 DMZ는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이 1953년 7월 27일 정전협 정(Armistice Agreement)에 의해 휴전됨으로써 생겨났습니다. 한국전쟁이 종 전(終戰) 아닌 정전(停戰)으로 마무리되고 육상의 군사분계선인 MDL(Military Demarcation Line)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각각 2km씩 양국의 군대를 후퇴시키 기로 약속하면서 만들어진 지역입니다. 임진강 하구인 경기도 파주시 정동리 에서 동해안인 강원도 고성군 명호리까지 총 248km, 1,292개 표지판으로 이 들어가기 전

5어져 있습니다. 국제법상의 제도인 DMZ는 비무장화, 일정한 완충 공간 존재, 군사력의 분 리 또는 격리 배치, 감시기구 설치 등 4가지 요소로 구성되지만, 현재 한반도 DMZ와 그 일대는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되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민통선지역 민통선(민간인통제선, CCL: Civillian Control Line)은 군사분계선으로부터 약 10km 밖에 설정된 경계선을 말합니다. 민통선과 군사분계선 사이 10km에 이르는 공간은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민통선지역 또는 민북지역이라고 합니다. 본래 민간인의 농사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귀농한계선으로 설정했던 것인데 국군 의 임무가 휴전선 방어로 바뀌면서 허가받은 출입 영농과 입주 영농이 가능해 졌습니다. 일반 민간인의 출입은 군 초소에서 여전히 통제하며, 실질적인 경계 는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접경지역 남북 분단 이후 국가 안보를 위해 지역 발전과 사유 재산에 불이익을 받아온 군사적 접적지역 및 그 인근지역을 말합니다. 접경지역지원특별법에 따라 규 정된 지역으로, DMZ 또는 NLL과 잇닿은 시군과 민통선 이남의 지역 중 민통 선과의 거리 및 지리적 여건 등을 기준으로 정한 시군, DMZ 내 집단취락지역 을 가리킵니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강화군, 옹진군), 경기도(고양시, 김포시, 동 두천시, 양주시, 파주시, 포천시, 연천군), 강원도(춘천시, 고성군, 양구군, 인제군, 철원군, 화천군)의 15개 시군이 해당됩니다.

6 한강하구중립지역 육상 DMZ 이외에 임진강 하구로부터 강화도 말도에 이르는 지역은 한강하구 중립지역(Neutral Zone, Hangang River Estuary)으로서 남북 공용의 특수지역으 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NLL(NorthernLimitLine:북방한계선) 유엔군 사령부는 1953년 8월 30일 동해와 서해에 남한의 해군・공군 초계 활 비무장지대(DMZ) 한강하구중립지역 DMZ 북방한계선(NLL) 군사분계선(MDL) 남방한계선(SLL) 민통선지역 접경지역(15개 시·군) 민간인통제선(CCL)

7동을 한정 짓기 위한 군사통제선으로 북방한계선인 NLL을 설정했습니다. 실 질적인 해상 경계선으로, 동해는 지상 군사분계선의 연장으로, 서해는 서해 5 도(우도-연평도-소청도-대청도-백령도)와 북한지역 중간선을 기준으로 설정했습 니다. 민간인통제선(CCL) 남방한계선(SLL) 북방한계선(NLL) 비무장지대(DMZ) 군사분계선(MDL)

8DMZ는 어떻게 남과 북의 경계가 되었을까요? 제2차 세계대전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식을 선언합니 다. 전쟁은 끝났지만, 한반도는 잠시 해방의 기쁨을 맛봤을 뿐 더 복잡한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1945년 12월에 열린 미・영・소 3국의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는 미소공동 위원회를 설치하고 일정 기간 한반도를 신탁통치하는 문제에 관해 협의합니 다. 이로 인해 신탁통치 찬성파와 반대파로 분열되어 혼란에 빠졌던 한반도는 이후 남과 북으로 나뉘어 남한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를, 북한은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합니다. 1 DMZ의 역사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종식 3상회의 대한민국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전쟁 발발 ⇨ ⇨ ⇨VS.

9막강한 군사력을 갖춘 북한은 남한을 해방시켜 통일을 성취한다는 명분으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을 일으킵니다. 민족 간에 총부리를 겨눈 채 밀고 밀리던 전쟁은 1951년 6월 30일 유엔군 총사령관 매슈 리지웨이가 공산군 측 에 정전회담을 제의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고, 회담 결렬과 재개를 반복 한 끝에 1953년 7월 27일 유엔군 대표와 북한・중국 대표 간에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남과 북 사이에 DMZ가 만들어져 끝내 통일이 아닌 분단의 상황 을 맞이하고 맙니다. DMZ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의 역사를 알아봅시다. 1960년대에 들어와 DMZ는 점차 중무장 지역으로 변했습니다. 북한은 북 쪽 DMZ 안에 광범위한 요새진지를 구축하고 무장공비를 남파하는(1968년 1 월 21일 일어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인 ‘1・21사태’) 무력 도발을 감행했으 며 1976년 8월 18일에는 판문점에서 ‘도끼 만행 사건’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로도 북한은 도발을 멈추지 않고 정전감시기구(중립국감독위원회※) 무력화마저 시도해, 자국 중립국감독위원회 소속 체코슬로바키아와 폴란드의 감독관들을 1993년 이후 차례로 추방하는 조치를 취합니다. ※중립국감독위원회(NNSC: Neutral Nations Supervisory Commission)는 정전 협정 준수 여부를 감독하는 기관입니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판문점에 중 립국감독위원회를 설치하고 정전협정 체결 상대국 중 유엔군은 스위스·스웨덴 감독관을, 북한·중국은 체코슬로바키아·폴란드 감독관을 파견했습니다.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비무장지대인 DMZ를 평화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노력들은 냉전・탈냉전 시 기를 불문하고 다양하게 시도돼왔고 여전히 의미 있는 의견들이 제시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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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습니다. 냉전 시기에 있었던 대표적 제안으로는 1971년 6월 12일의 ‘DMZ의 평화적 이용’ 최초 제안(군사정전위원회), 1988년의 ‘DMZ 내 평화시 건설’ 제안(노태우 대통령)을 들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제안들은 탈냉전 시기에 들어오면서 DMZ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구 체적인 노력과 성과로 나타났습니다. 1991년의 ‘DMZ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남북 최초 합의(남북기본합의서)’ 도출, 1998년 시작된 금강산 관광, 2000년 6・ 15남북정상회담 이후 성사된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도로 연결, 2004년 12월 개성공단에서의 첫 제품 생산 등이 그 결실입니다. DMZ의 새로운 가치와 달라진 위상을 알아봅시다. DMZ는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천혜의 생태환경을 지닌 지역이자 통일의 꿈을 품은 한반도 역사박물관입니다.(DMZ 서쪽 끝인 한강 하류와 그 주변 지역은 삼 국시대,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지며 오랫동안 한반도 역사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DMZ가 지닌 역사성은 물론이고 이 땅이 품은 자연 역시 이제 는 어느 한쪽도 포기하거나 부인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가치가 돼버렸습니다. 지난 역사와 현재 역사, 그리고 천혜의 자연이 공존하는 DMZ를 평화로 통일 된 땅으로 만들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시도 성과 1971 1988 1991 1998 2000 2004 개성공단 첫 제품 생산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연결 남북기본합의서 도출 DMZ의 평화적 이용 최초 제안 DMZ 내 평화시 건설 제안 금강산 관광 시작

12 DMZ는 전쟁의 폐허에서 생물 다양성의 보고로 변신했습니다. DMZ 인접지역에는 식생우수지역, 습지, 희귀식물군 서식지, 자연경관지 등 다양하고 중요한 자연생태지역이 존재하며 고등식물과 척추동물 2,930여 종 이 서식・분포합니다. 이는 한반도에 서식・분포하는 동식물의 30%에 해당하 며 두루미, 저어새, 수달, 산양 등 보호가 절실한 멸종위기종 82종이 포함돼 있 습니다. 특히 한강하구중립지역은 주요 철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으로 주목하고 있는 지역이며 2006년 한강하구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습니다. DMZ는 한반도의 동서생태축으로 변신했습니다. DMZ는 한반도의 허리 248km가 동서로 끊어지지 않고 연결된 생태계, 즉 동 서생태축으로서 남북생태축인 백두대간과 함께 한반도의 핵심 생태축입니다. 동서생태축은 크게 다음의 세 지역으로 나뉩니다. 첫째 중동부 산악지역입니다. 백두대간부터 한북정맥까지의 북한강 유역으로 2 DMZ의 자연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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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높은 산과 울창한 숲으로 이루어져 있고, 향로봉 일대는 원시림에 가까운 생태 계를 유지하며, 대암산 정상부에는 국내 유일의 고층습원(용늪)이 있습니다. 둘째 중서부 내륙지역입니다. 한탄강 유역 화산지대인 철원평야와 연천을 포 함하며 임진강이 있고 두루미와 재두루미가 겨울을 지냅니다. 셋째 서부지역입니다. 한강 및 임진강 하구를 포함해 대규모 습지와 갯벌이 발 달한 기수지역으로 한강하구는 남한에 남은 마지막 자연하구입니다. 이를 볼 때 DMZ 일원의 서식처 및 토지 피복은 산악지형인 동부지역부터 하 구와 갯벌의 평탄지형인 서부지역에 걸쳐 동고서저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습 니다. 저어새갈겨니 고라니 점박이물범 재두루미 시암리습지 장단반도 독수리월동지

15 ※참고 자료: 《DMZ의 미래》(조응래 외/한울 아카데미), 《DMZ가 말을 걸다》(박은진 외/위즈덤하우스) DMZ는 한반도의 지질학적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한반도를 가르는 추가령구조곡, 한탄강・임진강을 따라 형성된 주상절리, 적 벽 등은 한반도의 지질학적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경관도 아름다워 관광자 원으로서 가치가 큽니다. 한반도 전체 동식물의 멸종위기종 82종 2006년 한강하구습지보호구역 지정 수리부엉이 반달가슴곰 두루미 저어새 고라니 금개구리 수달 물거미 호사비오리 삵 산양 끈끈이주걱 솜다리 솔나리 참뱀차즈기 고진동계곡 송지호철새도래지 미시령계곡 대암산 직연폭포 두타연 갈목계곡 빙애여울 장군여울 조개못 장못습지 은대리 물거미 서식지 장좌못 문산습지 성동습지 한강하구 재두루미 도래지 곡릉천하구습지 산남습지 장항습지 초평도습지 천통리 철새도래지

16 DMZ 일원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요? 2014년 기준으로 접경지역의 인구는 인천광역시 9만 명, 경기도 226만 명, 강 원도 43만 명이며 3개 시도 전체 인구 1,642만 명의 16.9%에 해당합니다.(지 역 전체 인구 대비 인천광역시 3.1%, 경기도 18.3%, 강원도 23.0%) 민통선 마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DMZ 남쪽에 그어진 민통선 안에 지도에조차 표시되지 않은 채 들어앉아 있 던 113개 민통선 마을은 2015년 현재 8개로 줄어들었습니다. 그중 경기도에 4개 마을[대성동(자유의 마을), 백연리(통일촌), 동파리(해마루촌), 횡산리], 강원 도에 4개 마을[이길리, 정연리, 유곡리(통일촌), 마현리]이 있습니다. 민북 마을이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1959년에서 1973년 사이, 민통선지역에 북한의 선전촌에 대응하기 위한 99 3 DMZ의 인문 환경

17 개의 자립안정촌, 전략적 성격이 더욱 강한 12개의 재건촌, 재건촌의 미비점을 보완한 시범 농촌인 2개의 통일촌을 건설했습니다. 자립안정촌은 정전협정 체 결 직후 북한이 DMZ까지 다가와 농사를 짓는 선전촌을 건설하자 남한이 이에 대한 대응으로 민통선지역에 건설한 마을로, 자립안정촌을 통해 땅을 농경지로 활용하고 대북 선전 효과까지 얻을 수 있도록 대대적인 이주 정책을 단행했습 니다. 재건촌은 자립안정촌보다 더 강력한 대북 심리 효과를 노리는 전략적 목 적으로 건설된 마을로, 유휴지를 개간해 식량 증산에 기여한다는 또 다른 의도 가 있었기 때문에 당시 많이 사용하던 정치적 구호를 따서 재건촌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통일촌은 재건촌의 미비점을 보완한 전략적 시범 농촌입니다. 1980년대에는 주민들이 복잡한 마을 출입 절차와 영농 시설에 대한 규제 완 화를 요구함에 따라 민통선을 북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성동 1953년 8월 3일 ‘자유의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남한에서 유일하게 DMZ 안에 조성한 마을입니다. 정전협정 중 “정전협정이 조인될 시점 비무장지대 내에 거

18 주하고 있는 주민들은 계속 거주가 허용된다.”는 부칙에 따라 마을이 유지되었 으며, 정전협정이 조인되던 1953년 7월에는 60세대 160명이, 2014년 말 현재 는 49세대 207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통일촌 적극적인 이주 정책으로 조성된 민통선 마을입니다. 1972년 4월 제1사단 전 역 부사관 14명이 입주 영농을 시작했고, 같은 해 5월 박정희 대통령의 “재건 대성동 자유의 마을

19 ※참고 자료: 《DMZ의 미래》(조응래 외/한울 아카데미), 《DMZ가 말을 걸다》(박은진 외/위즈덤하우스) 촌의 미비점을 보완한 전략적 시범 농촌을 건설하라”는 지시에 따라 1973년 8 월 백연리를 ‘반공 의식 투철한 통일촌’이란 이름으로 재건했습니다. 해마루촌 모든 민통선 마을이 반공 정책에 기조를 두고 건설된 것과 달리 해마루촌은 햇볕정책의 산물로 탄생했습니다. 2001년 52채가 높은음자리표 모양의 전원 주택단지처럼 들어선 마을입니다. 대성동 자유의 마을 백연리 통일촌 동파리 해마루촌 횡산리 정연리 이길리 유곡리 (통일촌) 마현리 1 2 3 4 6 5 7 8

20 DMZ의 가치를 알아봅시다. 한국전쟁 정전 이후 지금까지 DMZ는 사람의 발길로부터 자유로운 채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이러한 지역적 특수성은 자연스럽게 DMZ의 가치를 높이는 요 인이 됐는데, 이를 역사적・안보적・생태학적・문화적 가치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가치 DMZ 서쪽 끝인 한강 하류와 그 주변 지역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한반도 역사 의 중심이었습니다. 이곳을 차지한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포함한 삼국을 통 일했고, 이후 패권을 장악한 고려의 수도 개성은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시작된 지역이자 남북교류의 상징인 개성공단이 위치하던 지역입니다. 이어진 조선왕 조의 수도 서울 역시 한강 하류에 자리한 채 600년 이상 한반도의 중심 도시 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남북관계가 전향적으로 개선되거나 통일이 이 뤄진다면 서울과 평양 중간에 위치한 DMZ의 역사적 위상도 다시 한 번 변화 할 것입니다. 4 DMZ의 현재

21  안보적가치 3년여에 이르는 한국전쟁 기간 중 세계 16개 나라 155만여 명의 젊은이가 전 투에 참가하여 참혹하게 희생당하고 정전을 한 지도 60여 년이 지났지만, 지 금도 DMZ에서는 남북한 군인이 중무장하고 총부리를 겨눈 채 대치 중입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세계 유일의 냉전 지역은 이곳을 찾은 전후 세대 모 두에게 전쟁이 낳은 비극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이를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 다는 다짐을 새기게 합니다.  생태학적가치 인간의 활동이 배제된 시간 동안 DMZ의 자연은 풍요롭고 독특한 생태계를 만들었고, 각종 야생 동물들에게 훌륭한 피난처가 돼주었습니다. DMZ는 다양

22 하게 분포된 삼림과 계곡, 습지, 갈대밭, 늪지대, 갯벌 등에서 서식하는 수많은 희귀종 동식물들의 천국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불 릴 만큼 생태학적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문화적가치 2009년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TIME)》은 한반도의 DMZ(판문점)를 ‘아시 아에서 가볼 만한 곳 25개소’ 중 하나로 선정하며 “Step into living cold war history.(살아 있는 냉전사의 현장으로 들어가다.)”라고 소개했습니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에게 판문점과 DMZ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관광 지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DMZ가 지닌 전쟁 유물과 기록물, 문화 자원을 이용 해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경각심을 갖게 하고 세계평화를 꿈꿀 수 있도록 인도하는 현장으로, 전쟁 없는 평화를 추구하는 세계인에게는 전쟁 역 사의 순례지로 인식될 관광과 역사 교육의 장입니다. DMZ의 인식 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민여가와레저를위한공간및행사유치를지속적으로하고있습니다. 김포, 고양, 파주, 연천 4개 시군을 연계해 평화누리길 및 철원군 DMZ 생태평 DMZ는 한국전쟁 정전 후 현재까지 계속되는 냉 전사의 현장이자 남과 북 을 나누는 차가운 장벽. DMZ와 판문점은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에게 세 계에서도 유일무이한 매 력적 관광지. DMZ는 세계 유일의 냉 전 현장이자 군사적 충돌 을 막는 완충지역. DMZ는 인간의 활동이 배제된 시간 동안 자연이 만들어낸 풍요롭고 독특 한 생태계의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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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화공원 탐방로를 조성하고 걷기행사(2010년부터), 자전거투어(2012년부터), 평화 통일마라톤대회(2015년), 울트라 트레일(신규)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습니 다. 또한 민통선 내 유일한 유스호스텔인 캠프그리브스를 향후 지리적, 역사적 독특성을 바탕으로 문화+예술+안보를 접목한 신개념 관광거점으로 개발할 계 획입니다. DMZ 생태관광지원센터(2016년 하반기 개관 예정)를 통해서는 DMZ를 생태+관광의 메카 또는 국제교류의 거점으로 활용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 정입니다.  DMZ접경지역마을활성화를위해다양한노력을하고있습니다. 주민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조합 형태의 식당, 민박, 간단한 관광 프로그램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 예로 DMZ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주민이 개발한 ‘DMZ 장단콩 초콜릿’ 포장지를 재능기부 형태로 지원하고 있고, DMZ 일원 환경보전의 중요성과 지역사회의 전통 및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생태체험교 육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 중입니다. 또한 통일촌과 대성동의 이야기가 담긴 민 속책자(ethnography)도 발간했으며, 통일촌 브랜드화 사업의 일환으로 박물관 을 개관했습니다. 이렇듯 민통선 주변 마을의 발전과 주민을 위한 다양한 정책 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세계와소통하며협력사업을추진하고있습니다. 독일연방자연보전청(BfN: Bundesamt fuer Naturschutz)과의 교류 독일은 통일 전 동・서독의 국경이었던 ‘철의 장막’, 즉 접경지역을 통일 이후 그뤼네스반트(Grünes Band, 녹색 띠)로 조성해 잘 보전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 은 과거 30여 년간 인간의 이용이 제한되면서 우수한 생태환경을 유지해왔고, 그로 인해 1990년 통일 이후 생태・역사 교육, 관광의 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 었습니다. 그뤼네스반트 조성은 국가의 지원을 받은 환경단체 분트의 주도 아

25 래 시작된 사업으로, 정찰로, 감시탑 같은 분단시대의 군사시설물을 교육・관 광 자원으로 백팔십도 변모시켰습니다. 또한 생태관광과 역사, 문화관광을 결 합한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 것은 물론 다양한 트레킹・자전거 코스 등을 개발해 유럽 생태관광의 중심지로 만들었습니다. 독일 그뤼네스반트와 유사한 DMZ의 적극적 활용을 위해 경기도와 BfN은 상 호협약을 체결하고(2012년) 생태관광총회 유치, 세계자연보전총회 공동 참석, 공동사진집 발간, 평창 및 베를린 사진전 개최 등 협력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 하고 있습니다.  생태계보전을위해꾸준히노력하고있습니다. DMZ 일원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BR) 지정을 위해, 러시아와 몽골을 거 쳐 가는 철새들의 도래지로서 철새 개체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 니다. DMZ 생태관광지원센터 개관을 통해서는 DMZ가 향후 생태와 관광의 허브(메카)로 활용되도록 할 것입니다. 또한 생태관광해설사 양성, 생태관광 전 문가 초청, DMZ 일원 생태체험교육, 학교로 찾아가는 DMZ 생태문화교실, 국 제행사 시 생태계 현장 방문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DMZ 일원 생태계 보 전 활성화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있습니다.

26 임진각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 개발, 조성되었으며 한국전쟁과 그 이후의 민 족 대립에 따른 각종 유물, 전적 기념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임진각평화누리 임진각을 상징하는 또 다른 이름으로, 넓은 잔디 언덕에서 다양한 공연을 감상 하거나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도라산역 경의선 남측 최북단 역으로 민통선 남방한계선 30m 지점에 위치하며 도라산 과 남방한계선 철책을 직접 관망할 수 있습니다. 도라산 평화공원 한반도 모형 생태연못과 관찰 데크를 통해 DMZ의 자연 생태를 체험할 수 있 으며, 공원 내 전시관에서는 도라산의 역사와 DMZ 자연 생태 자료 등을 입체 5 DMZ 일원의 명소

27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판문점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이 조인된 곳이며 이후 지금까지 남북대화의 장소 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정전회담으로 인해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되면서 세계적 명소로 알려졌습니다. 통일동산 통일 염원을 담은 안보교육장으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맑은 날은 개성 송악산까지 볼 수 있습니다. 프로방스, 헤이리 예술마을과도 가깝습 니다. 애기봉 북녘 땅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곳으로 명절이나 연말연시에는 실향민들 이 찾아와 망향의 한을 달래기도 합니다. 고대산 경원선 신탄리역 오른쪽에 있는 해발 832m의 산으로 정상에 오르면 철원평 야와 백마고지 등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연천 숭의전지 임진강변 아미산 자락에 조성된 사당으로 고려 태조 왕건을 비롯한 4명의 왕 과 고려 충신 16명을 배향토록 한 곳입니다.

28 열쇠전망대 1998년 4월 11일 건립하여 북녘 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지역으로 북한 생활 용품과 군사장비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자유의 다리 임진각 광장 망배단 뒤편 임진강 위에 놓인 다리로, 1953년 한국전쟁 포로들 이 이 다리를 건너 귀환하였기에 ‘자유로의 귀환’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증기기관차 경의선 장단역에 멈춰 선 증기기관차를 임진각 관광지 독개다리 입구로 옮겨 전시했습니다. ‘근대문화유산 제78호’로, 파주시의 ‘근대문화유산보존정비계 획’에 따라 보존되고 있습니다. 철도 중단점 한국전쟁 이전에 서울과 원산을 왕래하던 경원선 철도의 남쪽 종착지로, 신탄 리역(연천군 신서면)에 위치합니다. 신탄리역 근처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푯말이 서 있습니다. 제3땅굴 북한이 남침용으로 뚫은 땅굴 중 하나이며 발견된 땅굴 중 서울에서 가장 가 까운 위치로 거리가 불과 52km 정도입니다. 임진각에서 DMZ 관광버스를 이 용해 견학할 수 있습니다.

29 오두산통일전망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오두산에 세워진 안보교육장으로, 원형 전망실에서는 개성 송악산까지 보입니다. 주차장에서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해 갈 수 있습니다. 평화누리길 DMZ 접경지역인 김포, 고양, 파주, 연천 4개 시군을 잇는 대한민국 최북단 걷 는 길로, 마을 안길, 논길, 제방길, 해안철책, 한강하류, 임진강 등 역사유적을 따라 이뤄져 있습니다. 경기평화센터 임진각평화누리 입구에 있는 전시관으로, 1층 상설전시실과 2층 기획전시실 로 나눠 국제사회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 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캠프그리브스 ‘DMZ 체험관’ 정전협정 이후 미군부대가 머물렀던 가장 오래된 미군기지 중 하나로, 리모델 링을 통해 현재는 DMZ 내 최초의 군대 유스호스텔이자 평화안보 체험시설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DMZ 일원의 명소

30 고대산 판문점 제 3땅굴 도라산역 임진각 통일동산 애기봉 평화누리길

31 열쇠전망대 숭의전지 고대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