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끝, 역사의 시작' 이기환 이기환

임진강 하구에서 끊긴 군사분계선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은 파 주 장단 정동리~고성 현 내 명호리(248킬로미터) -1292개의 표지물이 200미 터 간격으로 세워진 점의 개념

한강하구는 중립항로 -휴전협정 제1조 5항=통일전망대~서해 우도까지의 81킬로 구간은 중립구역(“쌍 방의 민간선박 항행을 개방한다. 자기 측 군사통제하에 있는 육지에 배 대는 것은 제한받지 아 니한다”)-항행규칙은 정전위 규정.하지만 일종의 국제수로(민간인 통행 원칙적 으로 허용. 자유통행권) -A-B, 혹은 가-나선(36킬로)은 군사분계선이 아니라 섬에 대한 통제권을 구분하는 기준선(도경계 선) -1990년 한강준설선 통과. 1996년 유도에 떠내려온 소 구출위해 이듬해 1월 해병대 투입. 2005년 한강 거북선 자체동력 통과(유엔사정전위 허가)

강화 평화전망대에서 본 조강 조강과 유도의 송아지 유도에서 송아지 구출 하는 해병대 한강하구 준설선 첫 통과 (1990년 11월24일)

서해5도와 휴전협정 휴전협정 제2조 13항 "본 협정이 효력 을 발생한 후 10 일 이내에 후방 과 연해제도 및 해면으로부터 그 들의 모든 군사 력 보급물자 및 장비를 철거한다. 상기 연해제도란 1950년 6월24 일 상대방이 통 제하고 있던 모 든 섬을 말함."

 <한국>  -유엔군 해군이 한국전쟁 중 전 해역 장악  -북방한계선은 40년간 관할권 행사, 즉 실효적 지배를 한 것  -1992년 남북한 기본합의서도 '북방한계선' 인정한 것  <북한>  -남한이 주장하는 북방한계선과 완충지대는 중대한 휴전협정 위반. 남한의 일방 결정. 분쟁지 역은 북한의 정당한 영해.  -1999년, 휴전협정 상의 표시된 도경계선을 연장하는 서해해상분계선 설정  <그러나…>  -기본합의서의 함정=10조는 "남북의 해상분계선은 앞으로 계속 합의하고., 해상불가침구역은 해상불가침 경계선이 확정될 때까지 쌍방이 지금까지 관할해온 구역으로 한다" 합의. 여기서 ' 쌍방이 관할해온 구역'이 핵심. 북방한계선은 '쌍방'이 아니라 '일방'이 주장해온 선.  -북방한계선, 서해해상분계선 모두 논란많은 선. (북방한계선은 1952년 9월~53년 8월27일 유 엔군 총사령관인 마크 클라크가 설정한 이른바 '클라크 라인'의 후신. 주로 이승만 정권의 북진 을 막기 위한 유엔군 사령관 휘하의 내부적 작전운용 규정. 주한 미해군사령부 서류에 따르면 북방한계선은 1958년 쯤 유엔사령관의 일방적인 작전기획선으로 설정.)  -휴전협정 4조 60항=휴전협정 발효후 3개월 이내에 열릴 예정이던 정치회담 불발 남북한 양측의 주장

비무장지대의 어제와 오늘

비무장지대 일원 개념도 -비무장지대=1953년 휴전협정에 따라 획정 -민통선=54년 귀농선 출발. 2008년 군사분계선 이남 15킬로에서 10킬로로 축소 -군사보호구역=국방부장관 지정 구역

비무장 지대 다시보기(1)역사문화유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1년~2000년까지 군사보호지 역 조사 총 660건 조사, 그 중 새 유적 242건 발견 비무장지대 일원은 30만 년 전부터 고인류가 살 았던 곳 임진강, 한탄강 유역에서 20여건의 선사유적 확 인. 강원도 문암리에서 BC 6000~BC 5000년 유 적 확인 철원에는 궁예의 태봉국 도성이 군사분계선에 걸 쳐있음

비무장지대 다시보기(2)전쟁유산 임진강 한탄강 일대는 남북세력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길목 말갈-백제, 고구려-백제, 신라 당나라-고구려, 당나라 말갈-신 라 간 치열한 전투 벌어진 곳 한국전쟁 때도 19개국 장병들이 피를 흘린 곳 한국군 유엔군 50만 명, 북한 중국군 160~180만 명 인명손실 비무장지대 일원에서 한국전쟁의 2/3 기간을 보냄(3년1개월2일 중 764일을 이곳 일대에서 싸움) 아이젠하워 아들, 밴플리트 아들 등 미군장성 142명 참전, 35명 이 전사 혹은 부상. 모택동 아들 모안영도 사망 전쟁 후에도 비무장지대가 아닌 중무장 지대로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 전쟁유산이자 살아있는 전쟁박물관

경기도 유산분포

강원도 유산분포

문명의 탯줄(1)한반도 문명 잉태한 평강 오리산 임진강과 한탄강 낳은 한반도의 배꼽 평강 오리 산(453미터)

오리산 검불랑 분출도  2억3000만년 전 북중국판과 남중 국판 충돌  홍적세(200만년 ~1만년전) 때10여 번의 용암분출(열 하분출)  평강고원(해발 330), 철원(220)에 거대한 용암평야 생성

전곡리 현장 횡산리 분포지 그렉 보웬 주먹도끼 후지무라 조작  1977년 4월 전곡리에서 주먹도 끼 발견(미군병사 그렉 보웬)  모비우스의 가설을 뒤엎는 쾌거 (동북아에서는 아슐리안형 주먹 도끼 없다는 것이 정설)-세계고 고학 지도에 등재  임진강 한탄강 따라 야트막한 용암대지가 인류문명의 땅 전곡리유적 발굴 횡산리 구석기 사포지 문명의 탯줄(2)선사인의 세계

500억원짜리 주먹도끼가 만든 전곡 선사박물관

좌상바위, 베개용암, 재인폭포, 동이리 주상절리 주상절리  주상절리와 수직단애 생성=재질 약한 현무암 부분적으로 급격한 침식(혹한과 집중호우 반복, 거센 강물에 노출되는 적벽 하부)  지금도 단애 아래엔 절리면을 따라 떨어져 나온 현무암괴가 수북

임진강과 삼곶리 적 석총 난세의 여울(1)온조 세력의 남하 -개풍 장학리-연천 횡산리-삼곶 리-삼거리-우정리 1,2호-동 이리-학곡리 이어져 적석총 있음(임진강 9기, 북한강 7기, 남한강 10기) -압록강 중 하류 및 혼강 본 지류 의 적석총과 일치 -온조왕과 비류, 소서노, 10신(오 간, 마려) 등의 남하

임진강과 삼곶리 적 석총 난세의 여울(1)온조 세력의 남하 -개풍 장학리-연천 횡산리-삼곶 리-삼거리-우정리 1,2호-동 이리-학곡리 이어져 적석총 있음(임진강 9기, 북한강 7기, 남한강 10기) -압록강 중 하류 및 혼강 본 지류 의 적석총과 일치 -온조왕과 비류, 소서노, 10신(오 간, 마려) 등의 남하

횡산리 학곡리 적석 총 세부 학곡리 적석총 학곡리, 횡산리 적석총

난세의 여울(2)육계토성은 하북위례성? -“기원전 6년 도읍을 한수 남쪽으로 옮겼다”(삼국사기)=하북위례성 논쟁야기 -육계토성 주목=풍납토성(3.5킬로의 절반)과 비슷, 강안을 따라 축조된 토성. 배후에 산성(남한산성, 칠중성), 적석총(석촌동 적석총과 임진강변 적석총). 철자형, 여자형 주거지 쏟아져

무너진 육계토성 여자형 철자형주거지 육계토성 내부 백제토기 육게토성 내부 발굴지

관미성 전경 난세의 여울(3)고구려-백제의 100년 전쟁 서막(관미성 전투) -근초고왕의 고국원왕 살해(371년)이후 백제의 전성기 유지(369~396년까지 10전 5승1패) 396년 광개토대왕의 침략(4만 수군 이끌고 관미성 7방면 20여일 공략-58성 700촌 경략)-영원 한 노객 맹세(남녀 1000명, 세포 1000필 바치고) -540여 척의 배로 조읍포 출발, 65킬로미터의 대장정 -백제는 이후 힘을 써보지 못하고 475년 한성백제 멸망.

난세의 여울(4)고구려군 최전방사령부(호로고루) -1.12사태 침투로, 고랑포 땅굴, 북한군 전차부대 도 하지점에 버티고 있는 고구려 사령부 -553년 한강유역 잃은 고구려가 후퇴한 뒤 임진강변 에 최전방 사령부 설치(120년간)-맞은 편은 신라 이 잔미성 -고랑포구 위로 임진강 최초의 여울목 -맞은 편 신라성인 이잔미 성과 대치

팥조쌀 콩지하보급창고 호로고루 유적 유물 -고구려군 보급창고 발굴=소3마리분, 말과 멧돼 지, 사슴 등도 보임. 쌀, 콩, 조, 팥 등 -고구려인의 밥그릇은 1300그램. 현대인(200그 램)의 6배 -진군나팔을 울릴 대 쓰인 흙으로 만든 북도 확 인

사적 풍년 고구려성 고구려성이라는 이유로 사적 467호 468호 469호로 지정된 호로고루, 당포성, 은대리성

홀대받는 백제 신라 유적 처참한 육계토성과 방치된 칠 중성

백제와당 고구려 토기 신라와당 칠중성 남벽 난세의 여울(5)전통의 국제 전쟁터(칠중성) -적성 구읍리 칠중성=낙랑 말갈-백제, 백제-고구려, 고구려-신라, 신라- 당나라가 싸운 곳(필부와 비삽의 일화, 당 유인궤가 치고 후퇴한 곳) -1951년 4월22일, 영국 글로스터 대대 와 중국군 3개군이 싸움. 6시간만 에 궤멸. 영국군 설마리, 감악산 계 곡으로 후퇴. 800명 가운데 49명 생존, 529명 포로.

중국군의 인해전술

감악산 고비와 북한 산 비, 성벽 감악산 고비는 진흥왕 순수비?

용치 무너지는산성 난세의 여울(6) 당나라 축출한 매소성 -연천 전곡 대전리 산성 -675년 당 이근행이 이끄는 20만 군대를 쫓아 군마 3만380필 노획. 이후 18전승 -676년 2월 당나라 안동도 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 로 옮김 -1951년 4월22일 중국군 12군과 15군 도하 -경원선철도와 3번 국도,. 37번도로, 322번도로, 사통팔달.

난세의 여울(7)궁예 대동방국의 도읍 철원 태봉국 도성  궁예가 905년 도읍을 세운 풍천원 들판(영원한 평등이 깃 든 세계를 뜻하는 태봉국 수도)  도성의 외성은 12.5킬로, 내성 7.7킬로(조선의 서울성곽 은 17~18킬로)  현재는 군사분계선을 남북으로 딱 반으로 가르고 있음(분 단의 상징)  철원-김화-평강의 철의 삼각지대에 놓임  평강에는 핵무기 가상표적이 있음

임진나루 동파역 헤음원지 해마루촌 영욕의 강산(1)임금의 도피로(파주 임진나루) -1592년 4월30일, 선조가 한양-벽제-혜음령-파주 마산역 지나 임진나루로 피난. -승청 헐어 불을 피운 뒤 건너 동파역에 닿음. 호위병들이 음식 먹고 도망. -사관도 사초를 불에 넣어 태운 뒤 도망. 의주까지 왕을 호종한 문무관은 겨우 17인.

초평도 덕진당터 창의문 덕진산성 영욕의 강산(2)인조반정군의 비밀훈련장(파주 덕진산성) -민통선 이북 초평도 바라보는 산성(미확인 지뢰지대) -1623년 3월13일 새벽 벌어진 인조반정을 위해 장단 부사 이서의 반란군 700명이 훈련했던 곳. 돈의문

심원사 지장보살상 석대암과 지장보살영험비 믿음의 성지(2)지장신앙의 성지 석대암 -연천 철원 포천에 걸쳐있는 보개산 내 환 희봉(877미터)에 있는 지장신앙(지옥 서 고통받는 중생이 구제될 때까지 부 처가 되지 않겠다는 보살)의 성지 -720년(신라 성덕왕) 이순석 이순애 형제 의 사연. 왼쪽 어깨에 화살맞은 금멧돼 지. 샘물 가운데 석상으로. 다음날 돌 위에 앉아계신다면 형제 모두 출가 약 속-암자 만들어 -한국전쟁 때 행불됐다가 1954년 극적 귀 환. 지금은 심원사 봉안.

믿음의 성지(3)지뢰지대에 널브러진 고려불상(파주 군내) -2005년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미확인지뢰지대서 발견 -불상 크기 468센티. 1사단 주임원사가 발견

고랑포구 비석 삶과 죽음의 공간(1)승리한 패배자가 잠든 경순왕릉 -연천 장남 고랑포에 묻힌 경순왕 -935년 고려 귀부 후 43년, 태조 왕건 보다 35년 더 장수 -왕건 딸(낙랑공주)와 혼인, 큰 아버지 (김억렴)의 딸을 왕건에 시집보냄. 현종을 낳음. 이후 고려왕통은 바로 경순왕계로 이어짐 -김알지 시조 둔 신라 김씨 분파(450개) 가운데 90%가 경순왕의 후예 -“왕의 운구는 100리를 갈 수 없다”는 논리로 고랑포에 묻힘

삶과 죽음의 공간(2) 전 기황후 묘 연천 상리. 재궁동 황후총. 원나라 순제의 부인 기황후 묘로 전해짐.(동국여지지, 연 천현읍지 등) 기황후는 14살때 공녀로 끌려가 온갖 역경 끝에 황후가 되었음. 공과는 있음. 일족이 공민왕에게 멸족당하자 군대를 끌고왔음 (대패). 그러나 원나라에 고려문화를 심음. 한류의 원조. ('보초서는 병사들 고려언어 배우네. 어깨동무 하며 노래부르니 우물가 에 배가 익네'라는 노래가 있음.)

삶과 죽음의 공간(3) 불사이군의 충신 이양소의 자취 중면 적거리 신포동. 이양소 선생의 묘. 두 문동 72현. 순천 이씨. 12대까지 조선의 녹 먹지말라고 신신당부. 무덤전면에 12굽이 산 등송이 있음. 이방원과 동갑친구. 청구야담에 태종이 물색으로 은거 한 선생을 찾음. 시를 읊어 찾아냄. 글나 선 생이 등용을 거절, 곡 산군수로 임명했지만 헛수고. 선생이 죽자 태종이 철원땅에 무덤 을 마련했지만 '절대 연천땅을 떠나지 마라' 는 선생의 유언에 따라 철원 땅 10리를 베어 연천으로 편입. 도다돌(선생의 생애가 도연명 닮았다고), 어수물, 왕림리, 차탄천은 태종임금과 연관된 지명. 엄청난 스토리텔링

허준과 어머니 묘, 복원한 비석, 양천허씨 족보, 복원된 허준묘 등 삶과 죽음의 공간(4)의성 허준이 현현한 파주 장단 -서지학자 이양재씨, 민북지역 헤매다 발견(양천 허씨 족보에서 허준의 묘가 장단 하포 광암동 쌍분이라 는 내용 보고) -족보 추적하다 허준의 13대 종손 허형욱이 살던 곳임 을 간파(해방 이전엔 100여 가구 허씨 집성촌 존재) 1991년 “陽平00聖功臣 0浚”이라는 동강난 비석 발견

전쟁의 추억(1)세상 어디에서 볼 수 없던 특이한 전쟁 ■승리할 의지가 없는 전쟁 -미국=소련의 유럽침공 우려. 동맹국들의 휴전압력 가속. 중국의 재래식 전쟁 능력 인정. -중국=신생국으로서 경제발전에 발목(1950년에 비해 51년 예산 60% 증가, 32%가 전쟁투입). 무기 장비 모두 열세. 제해·제공권 상실로 보급난 ■휴전모색 -미국="대규모 공격대신 아군의 관찰범위 확대 주요거점 점령"(리지웨이 사령관) -중국="38도선 부근에서 지구전 회담 병행, 휴전 매듭짓자."(중공당중앙위) ■전선의 고착화 -1951년 6월쯤 임진강 하구~판문점~산명리~금성~송정~가마우골~신대리~남강으로 전선고착 -1127일 중 764일 교착전, 전선의 종심은 20킬로미터에 불과

전쟁의 추억(2)유치한 탁상설전(卓上舌戰) 1951년 7월10일 본회담이 열린 내봉장 10월 25일 휴전회담이 열린 판문점1951년 7월 8일 예비회담장 소인 광문동 1951년 7월8일 첫 접촉에 나선 유 엔군측 대표단(이수영 중령 등)

유치한 줄다리기 -유엔군 남면 작전(천자 자처), 공 산군 다과 베풀기 작전(하사), 지프 백기, 높은 의자 논쟁, 깃발논쟁, 2 시간 11분의 눈싸움 등 갖가지 유 치찬란한 회담 -군사분계선 싸움(공산측 38도선, 유엔군 측 당시 접촉선 및 30~50킬 로 북방 주장) -판문점에서는 159회 본회담, 575 회 공식회의, 1800만 단어 소비 끝 에 휴전협정 매듭

전쟁의 추억(2)고지에 깃발을 꽂아라 -대표적 고지전=백마고지,저격능선, 불모고지, 포크찹, 수도고지, 지형능선, 단장의 능선, 피의 능선, 도솔산, 베티고지, 351고지, 금성지구 등 -블루하트, 크로마이트, 코만도, 킬러, 파일드라이버, 러기드 등 작전명과 미국 주 와 도시이름 딴 와이오밍선, 미주리선, 올보니선, 유타선, 네바다선 등 작전통 제선도 유명 -고지전에 대한 후회=“작은 고지 하나두고 그 많은 물자와 인명을 벌여야 했 나”(백마고지), “보잘 것 없는 둥근 언덕 세개를 차지하려고 4000명이나 넘는 아 군병사가 목숨을 잃었다.”(피의 능선 및 저격능선)

백마고지 전투 -철의 삼각지대의 서남쪽 꼭짓점, 철원읍 산명리. 폭2킬로, 길이 3 킬로. 1만8000여명 전사.(1952년 10월6~15일). 12번이나 쟁탈전. 철원평야, 3번, 463번, 464번 도로 확보.

-베티고지전투(1953년 7월13~16일 김만술 소위가 13시간 동안 서봉을 19번 뺏고 빼앗기 는 접전 끝에 확보(중국군 350명, 한국군 23명 전사). -노리고지 전투(1952년 12월11~13일 중국군 2700명 사살. 하지만 둘 다 이북) 베티 노리고지 전투

전쟁의 추억(3)세계 의 젊은 넋 잠들다 -직접 참전국 19개국 젊은이 220여만명 희생 -남북한 병사 90~110 만명, 유엔군 32만명, 중국군 97만명 등 -마오쩌둥 아들 마오안 잉과 8군사령관 밴플리 트 아들 지미 공군 중위 등

전쟁의 추억(3)노블레스 오블레주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 입대. 미군 폭격으로 전사 -미국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원수 아들 등 미군장성 아들 142명 참전. 밴플리트 8군사령관 아들 지미 실종, 클라크 유엔군총사령관 아들 빌 대위 단장의 능선 전 투서 중상 등 35명 전사 혹은 부상.

전쟁의 추억(3)피델 라모스 중위의 전투 티본고지와 에리고지=연천 역곡천 지류. 1952년5월18일 피델 라모스 중위 가 필리핀 대대 소대장으로 참전. 중국군 70명 살상. 중국군 벙커 7곳 파괴, 코라손 대통령 남편 베니그노 상원의원, 로물로 전 외무 등도. 필 리핀 지폐엔 아키노의 종군기사가 있음

전쟁의 추억(3)'가그뉴'부대, '리틀 타이거' -에티오피아=셀리시에 황제 근위병 1200명 파병. 121명 전사자 536명 부상. 실종 없 음. 포로는 곧 불명예. '절대 지지않는다'는 '가그뉴(Kagnew) 정신 무장'. -태국군='리틀 타이거' 별명. 포크찹 전투 등에서 맹활약 -터키군=언어소통 문제로 어려움 겪었지만 금량장 전투 등에서 맹활약

전쟁의 추억(3)다양한 참전의 사연들 -프랑스군=몽클라르 장군, 계급낮춰 중령으로 참전 -콜롬비아군=정정불안에도 대대급 규모 파견 -영국군=호주, 케나다, 룻겜부르크, 벨기에 6개국이 영연방 사단 구성. 글로스터대대 활약 유명. 벨기에 상원의원및 국방장관(모레안 멜론)이 소령으로 출전

거대한 단일요새(1)지하만리장성을 아시나요 중국군, 1951년 8월~52년 말까지 전선에 갱도를 파기 시작(지 하만리장성으로 명명) 미군의 이른바 교살전에 따른 교량 파괴로 보급선이 무너지고, 중국 전체예산의 32%가 한국전쟁에 투입되는 등 부담이 거 세지자 전선고수 위해 갱도작전 돌입 프랑스가 구축한 마지노선을 방불케 하는 거대한 요새 구축 식당과 병원, 3개월 치의 식량을 갖춘 지하시설물 길이 250~287㎞, 폭 20~30㎞, 갱도수 9519개, 엄체호 78만여 개, 참호길이 3683㎞, 토치카 등 10만여개 등 모택동, “어떤 사단도 3개월의 식량을 보관할 지하창고가 있 었고, 강당도 있었다”고 자화자찬

지하만리장성의 제원

지하 만리장성 추정도

갱도를 파는 중국군

상감령 전투와 저격능선 전투 지하만리장성은 오성산(1062미터) 을 둘러싼 삼각고지와 저격능선 전투(중국은 상감령 전역)에서 진 가발휘=2만~3만7000명이 희생 1952년 10월14일 쇼다운 작전 감행. 유엔군 3개 사단 6만명, 중국군 3 개사단 4만명 투입(양측 230만발 포탄). 상감령 봉우리 2미터 낮아 짐. 융단폭격으로 1미터 흙먼지 유엔군은 삼각고지 실패하고 저격능 선 일부만 확보.(사실상 실패한 작전)-작전권 한국군에 넘겨 중국군 45사단 8.8킬로 갱도 306개 와 엄개참호 160개, 교통호 53킬 로, 참호 2400개 등 (설령 원자폭 탄 투하해도 실패했을 것) -승리 했다면 휴전선은 20킬로 북쪽으 로 전진했을 것.

오성산 저격능선 상감령 전역 오성산과 상감령 전투

위문단의 공연 오성산과 조 선금대화 랑랑과 상감령 정신 -1950년대 상감령 정신이 대륙 풍미('불굴의 의지' 정신) -영화 <상감령>(1956년)의 주제곡 '나의 조국(我的祖國)'은 제2의 국가 - 베이징올림픽 리허설 주제곡, 피아니스트 랑랑(郞朗) 2012년 백악관 만찬에 서 연주. "승냥이와 이리가 침략해오면(若是那豺狼來了),엽총으로 맞이할 것 이네(迎接的有獵槍)~’

거대한 단일요새(2)핵폭탄 맞을 뻔한 평강 1950년11월20일 중국의 개입으로 위기감 미국 트루먼 12월3일 핵 무기 쓸 수 있다고 언 급 미극동군사령부 가상표 적 만들어(평강) 영국 등 우방의 반대로 무산

거대한 단일요새(3)비무장지대 아닌 중무장지대 정전협정 상 철책도 허용되지 않는 지역 1963~65년 사이 남북이 진지구축, 철책 구축 현재 미확인 지뢰만 해도 69㎢나 됨 살아있는 전쟁박물관

거대한 단일요새(3)전쟁과 분단의 흔적

거대한 단일요새(4)문화유산이 된 전쟁의 흔적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2002년부터)

증기기관차 승일교 암정교 끊어진 31번 국도

출렁다리 금강산철교 유엔군화장터(연천) 장단면사무소

연천은 거대한 세계유산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함. 진정성과 완전성을 두루 갖춰야 함 비무장지대 일원 유산은 20세기 현대사에서 대표적인 부(負) 의 유산으로 꼽힘. 고대전쟁의 산물 각종 성곽, 보루, 봉수 등이 있으며, 중국 군과 북한군이 구축한 250~287킬로미터, 폭 20~30킬로미터 에 이르는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는 거대한 지하장성과 전 쟁 이후 남북이 구축한 각종 시설물 등 비무장지대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요새 제3차대전의 대체전으로서 벌인 한국전쟁 때 19개국 병사들 의 피가 서린 고지유적과 고대의 전쟁유적이 중첩된 곳 동서냉전의 상징유산이자 평화희구의 유산으로 가치 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