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경기도 DMZ > 언론보도

언론보도

제목
임진강 독수리의 편지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5년 2월 1일
파일첨부
첨부파일없음
대한민국에서 겨울나기를 하고 있는 독수리입니다. 우선 월동 피난처를 제공해 주시고, 더 나아가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243호)로 지정까지 해 주신 대한민국에 감사를 드립니다. 법적 지위로 따지면 석굴암이나 숭례문과 대등한 위치이니 거듭 고맙다 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러나 불행하게도 최근 벌어진 참사, 아니 연례행사인 양 이어지는 비극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지난해 12월 21일 경기 파주시 장단면의 일명 장단반도에서 저희 동료 독수리 8마리가 몰사했습니다. 죽은 독수리들은 대부분 어린 새였습니다. 이 아이들은 약 53일 동안 품어 부화시켜 4개월 이상 키운 귀한 ‘외둥이’들입니다. 굶주림과 추위를 피해 10월 말 고향 몽골을 출발해 6000여 리를 하루 평균 368km씩 비행해 비무장지대 부근에 도착했지요. 밤에는 감악산 부근 숲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먹이를 구하기 위해 주로 임진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장단반도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맙게도 덩치는 크지만 사냥이 서투른 저희들을 위해 조류보호단체가 돼지, 닭 같은 특식을 제공해 왔습니다.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먹이공급량은 저희들로서는 그야말로 ‘새발의 피’라고나 할까?

이 땅에 피난 온 독수리는 모두 1200마리가 넘고 이곳 파주시 권역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무리만 500마리가 넘습니다. 이런 실정에서 서열이 낮은 녀석들이 아사를 면하는 것은 기적입니다. 굶기를 ‘밥 먹다’시피 하다 보니 유혹에 빠지기도 쉽지요.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2월에 있었던 ‘임진강 독수리 떼죽음 사건’이지요. 독극물 밀렵으로 죽은 오리와 너구리를 먹고 독수리 32마리가 참사를 당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외국의 환경단체들은 “한국은 국제보호조의 킬링필드냐”는 항의가 있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에 동원된 수사관만 30명이었습니다. 저희들은 큰 기대를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실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범인도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참사는 연례행사처럼 계속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후 달라진 것이 있다면, 환경단체에서 먹이주기를 시작한 것이지요. 이러한 환경단체의 먹이주기에 대해 곱지 않은 눈길을 주는 분들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몽골처럼 야생동물이나 가축의 사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면 먹이주기를 할 필요가 없지요. 비교적 야생동물이 많다는 비무장지대에서도 야생동물의 사체를 시력 좋은 저희 눈으로 찾기 어렵습니다. 고라니 같은 짐승들이 크게 늘어났지만, 옛날 같이 범과 늑대 같은 맹수가 없으니 사냥 잔해물이 생길 수가 없지요.

아무튼 저희 독수리들은 머잖아 겨울이 끝나면 고향으로 귀환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참사가 재연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를 위해 이 땅의 주인들께 몇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우선, 저희가 구걸하지 않고 자연에서 먹이를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자연을 복원해 주십시오. 그때까지만이라도 비극이 재연되지 않을 정도의 적정한 먹이를 제공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 지역에 먹이주기를 집중하는 것은 먹이서열에 밀린 독수리들에게 치명적입니다. 가급적 분산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라와 가정에 평화와 희망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임진강가에서 독수리 올림

노영대 한국자연정보연구원장

[동아일보 2005-01-30 20:45]